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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경기도교육청이 과학고 추가 설립 계획을 밝히자, 지자체 단체장들과 국회의원들이 나서 지역에 과학고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가장 앞장선 것이 민주당 쪽 지자체장들과 국회의원들이다. 문재인 정권에서 폐지한 과학고를 살려낸 윤석열 정권과 한패가 되어 교육을 망치고 교육주체들을 괴롭히고 있다. 이들이 이렇게 혈안이 되어 나서고 있는 명분은, 모두 지역 경제 살리기와 인구 유입이지만, 사실은 권력이나 자본력을 가진 이들의 배를 불리기와 자신의 치적 쌓기에 불과하다.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면서 교육을 상품화할 뿐인, 학교를 교육서비스가 지불 능력에 따라 교환되는 시장으로 만들뿐인, 불안정·위험 노동으로 교육노동자가 교육이 아니라 생존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교육이 자본주의 체제 국가의 이데올로기 장치로 기능할 뿐인 교육 현실은 자본과 국가권력이 주도하는 교육개혁, 교육체제 전환으로는 결코 바꿀 수 없다. 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체제와 국가에 정면으로 맞설 것을 주저하지 않는 상상이 필요하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자본주의 체제의 균열은 ‘연대’로부터 : 학생인권을 중심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노동자들을 계속 편 가르고, 서로를 돌보지 못하고 각자도생하게 만들고 있다면, 체제의 균열은 ‘연대’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 시작은 현재 교육 정세의 중심의제이자, 교육주체 분열에 윤석열 정권이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학생인권이 될 수 있다.

학교 또는 교육은 모두 ‘학생’을 중심으로 모이고 조직된 배움의 공간이다. ‘학생인권’을 중심으로 조직되고 구성된 학교는 어떤 모습일까? 그곳에서는 과중한 업무도, 노동권 탄압도, 차별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학교 노동자들의 모습을 직접 보고 경험하는 것이 살아있는 교육이 될 수밖에 없고, 학교 노동자들의 인권은 곧바로 학생인권과 직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령, 폐암 환자가 속출하는 급식실에서 밥을 먹는 학생들에게 이를 모른 척하고 밥을 먹으라는 것은 싸이코 패스를 기르는 교육이다. 비정규직, 장애, 성별, 성적지향, 성적, 인종, 국적 등 온갖 차별이 난무하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교과서 속 ‘박제화된 평등’과 능력주의에 근거한 ‘공정한 차별’일 뿐이다. 또한, 민주적이지 않은 학교에서 온전한 정치기본권, 노동기본권 없는 이들이 제대로 민주주의와 자치를 배울 수 없다.

보수와 혐오세력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세력은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학생인권조례’ 폐지로 단결하고 있다. 우리가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막아내고, 나아가 학생인권법을 제정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교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대책 역시, 학생인권이 될 수 있다. 학생은 인권친화적인 환경에서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이를 충분히 지원하는 것이 사회의 역할이며, 이것이 말로 학교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인권법의 내용을 ‘자유권’적 한계에 가두지 말고, 사회권과 연대권까지 확장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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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주체의 신뢰 회복과 연대 복원을 위하여

자본과 정권의 분할 정책에 맞서기 위해서는 일상적 연대를 복원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전쟁터’가 되어버린 학교에서 각자도생하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나 많은 상처를 입혔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교 안의 각 주체들이 투쟁에 나설 때, 우리는 언제나 같은 그림 안에 있었다. 어떤 투쟁이든 가장 앞장에서 서로 옆자리를 채우던 연대를 이제는 복원해야 한다.

우리는 학교비정규직 파업에 연대 성명을 내고,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반대하는 공동 액션을 하고, 교원노동-정치기본권 투쟁에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는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각자의 투쟁이 서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서로의 요구가 모두에게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교육 주체들을 함께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내자. 그 형식은 다양할 수 있다. ‘체제전환 포럼’과 같이 내용을 중심으로 만날 수도 있고, ‘기후정의 행진’처럼 실천을 중심으로 만날 수도 있다. 부천고 과학고 전환 저지 공대위처럼 지역의 교육현안을 중심으로 하는 모임을 만들 수도 있다. 무엇을 중심으로 연대를 만들고 복원할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모임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교육주체의 연결과 연대는 자본과 정권의 분리-분할 통제의 프레임에 빠지지 않도록 서로를 붙잡아줄 것이다.

실질적 변화를 만드는 학교파업

학교를 구성하는 교육 주체들은 이미 아무런 권력도 권리도 없다는 것을 확인해왔다. ‘교권’은 자본과 정권이 ‘허락’한 범위 안에서 권리이기에 ‘생활지도 고시’와 같은 수준을 벗어날 수 없고, 양육자와 학생들은 교육 소비자로서의 권리만 강조되어 입시경쟁에 몰입할 권리 이외의 권리는 억눌리고 배제되고 있다.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은 파업권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교육노동자이지만, 학교에서는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기 일쑤이다. 그들이 교사노동자이든, 학생 또는 양육자이든, 교육공무직 노동자이든 현재 주어진 권리에 안주할 경우 이름만 주체인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 주어진 권리를 넘어서는 투쟁, 한계를 넘는 투쟁을 조직하고 정권과 체제가 요구하는 일을 멈추는 투쟁, 그것이 바로 학교 파업이다.

학교 파업은 말 그대로, 학생과 노동자가 학교에 가지 않는 결석, 출근 거부 등의 형태가 될 것이다. 양육자는 자신의 일터에서 일 손을 놓는 파업이다. 당연히 쟁의권을 확보한 합법 파업이 될 수 없으며, 목표는 정치파업이 될 것이다. 그 전까지 파업은 다양한 형태로 시도될 수 있고, 이에 대해서는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 학생들과 수업시간에 파업 의제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이것이 좀 더 확장되면, 일정한 장소에 모여 토론을 하거나 집회를 기획할 수도 있다. 바로 대대적인 학교파업을 시작할 수 없다면 가능한 대로 우선 교육공무직 파업에 연대와 지지 활동를 조직할 수 있다. 청소년 기후정의 결석시위에 함께할 수도 있다. 3.8 여성노동자들의 파업에 함께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파업을 할 수 없다는 패배감부터 걷어내는 것이 시작이다. 이를 바탕으로 윤석열 정권의 퇴진과 체제전환을 요구하는 정치 파업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기획과 조직이 필요하다. 이러한 역할을 하기 위해 노동조합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학교와 학교 밖을 연결해내는 중요한 고리로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조합의 단결이 필요하다.